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코르순-체르카시 포위전 (문단 편집) == 우리는 이 지옥에서 탈출한다! == 제3기갑군단은 포위망 북쪽으로 소련군의 완강한 방어와 보급 부족에 고생하며 진격하고 있었다. 제3기갑군단은 산데로브카로 진격하는 길목인 239 고지를 점령하려 애를 쓰고 있었지만 매번 실패로 돌아갔다. 그리고 소련 제5근위전차군이 제3기갑군단을 몰아 내려고 달려오고 있었다. 이때 제8군 사령부는 슈팀머만 집단에게 북쪽 239 고지로 진격해 제3기갑군단과 연결하라고 명령했다. 마침내 슈팀머만 집단은 포위망을 빠져나가기 위한 공세를 시작했다. 그러나 슈팀머만 집단과 제3기갑군단이 고작 7킬로미터 떨어져 있을 때 코네프가 2월 17일에 포위망 안의 모든 독일군을 섬멸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제4 근위군, 제27군, 제52군, 제5근위기병군단이 제5근위전차군 소속 전차들을 지원받아 포위망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후퇴하는 독일군 후방으로 [[카자크|코사크]] [[기병]]들이 돌입해 독일군을 닥치는 대로 베어나갔다. 슈팀머만은 철수를 후방에서 엄호하기 위해 제57 사단과 제88사단에서 병력을 차출해 탈출로 후방에 남았다. 슈팀머만 집단과 제3기갑군단은 필사적인 전투 끝에 5킬로미터까지 가까워지는 데 성공했고, 마침내 산데로브카에서 서로 연결하는 데 성공했다. 포위망이 뚫린 것이다. [[파일:external/www.otvoyna.ru/kor2.jpg]] ▲ 가운데를 주목, 불과 5km 간격만이 남은 상태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OEF-map-5.jpg|width=550]]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undesarchiv_Bild_101I-711-0438-05A%2C_Russland-S%C3%BCd%2C_Marsch_auf_unbefestigter_Stra%C3%9Fe.jpg|width=550]] ▲ 진흙밭에 빠져 버린 독일군 차량 그러나 탈출로는 순식간에 지옥의 문으로 변했다. 소련 [[포병]]들은 포화와 로켓을 아낌없이 탈출로로 날렸으며 [[Il-2]] [[공격기]]들이 한꺼번에 탈출로 상공에 나타났다. 좁은 탈출로에는 버려진 차량, 전차들과 독일군 부상병들이 무자비한 포화와 항공 공격 속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있었다. 밤중에도 소련 야간 폭격기들이 몰려와 폭탄을 퍼부었다. 좁은 탈출로도 위험에 몰리자 만슈타인은 더 이상 히틀러의 후퇴 허가를 기다릴 수가 없었다. 만슈타인은 슈팀머만 집단에 포위망을 뚫고 나오라는 뜻으로 이렇게 명령했다. >"암호명 자유(Freiheit), 작전 목표 리즈안카, 2300시." 짧은 명령이 전달되자 슈팀머만은 행동을 개시했다. 슈팀머만 집단은 3개의 진격로를 통해 포위망을 뚫을 공세를 가할 것을 결정하고 북쪽에서 제112 사단 집단, 비킹 사단은 남쪽에서 제72사단은 중앙에서 공격하며 제105척탄병연대가 지원할 것이었다. 야습을 위해 실탄 사용은 최대한 자제되었고 전원 [[소총]]에 착검했다. 마침내 작전 개시 1시간 30분 후 슈팀머만 집단은 소련군의 방어선을 뚫는 데 성공했다. 04~10시에 몇몇 독일군 연대와 대대들이 슈팀머만 집단 소속 병력이 포위망을 뚫고 나가 옥치아브르의 독일군 방어선에서 제3기갑군단과 제1 기갑 사단과 합류하는 데 성공했다. 공세가 계속되는 동안 슈팀머만은 직할 부대를 이끌고 최후방에서 몰려오는 소련군을 막아내며 탈출을 돕고 있었다. 그러나 진격로 좌익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소련 제5근위전차군 병력들이 239 고지로 몰려들어 방어를 확고히 함에 따라 산데로브카에 뚫어 놓은 돌파구가 다시 닫혀 버렸다. 그러자 슈팀머만 집단은 산데로브카 탈출로를 포기하고 남쪽으로 향해 그닐로이 티키취 강을 도하할 것을 결정했다. 이 결정은 소련군의 공세를 받아 내면서 수많은 사상자를 남겼지만 결국 새로운 탈출로를 여는 데는 성공했다. 물론 대부분의 중장비를 포기해야 했다. 독일군이 포위망에서 탈출하고 있다는 것을 안 코네프는 자신이 스탈린에게 한 호언장담이 깨지고 있음을 알고 무척 열을 받았다. 바투틴은 포위망이 뚫렸다는 보고를 듣고 크게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한편 [[스타프카]]에서는 독일 제3기갑군단의 전투력을 과대평가하여 더 이상의 공세는 무리라고 판단하고 있었지만 코네프는 [[IS-2]] [[중전차]] 여단이 증강된 제20전차군단을 동원하여 다시 포위망을 닫아 버리려 했다. 그 무렵 소련 제206소총병사단과 제5공수사단이 패퇴함으로서 탈출로는 더 넓어지게 되었다. 그날 정오, 슈팀머만 집단의 사단들이 그닐로이 티키취 강에 도착했다. 강의 급류는 거셌고 전날 내린 눈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슈팀머만 집단 사단에게는 이 문제를 해결할 도하 장비들이 전무했다. LSSAH 사단이 다리들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중장비에 우선 순위가 할당되었다. 후방에서 소련군 전차들과 기병들이 몰려오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독일 병사들은 앞다투어 강에 뛰어들었다. 적지 않은 병사들이 급류에 휘말리거나 [[심장마비]]에 걸려 사망했다. 그러자 비킹 사단장 [[헤르베르트 오토 길레]] SS 소장이 손에 손을 잡아 인간 사슬을 만들어 강을 건너라는 명령을 내렸다. 손이 미끄러지거나 소련군의 포화에 사슬이 끊김으로써 최후를 맞은 병사들도 있었지만 무질서하게 맨몸으로 도하하는 것보다는 한결 나았다. 그 동안 독일 [[공병]]들이 강 위에 부교를 여러 개 가설하는 데 성공해 제57사단과 제88사단은 무사히 도하할 수 있었다. 탈출한 병력들은 리시안카의 독일군 방어선으로 향해 후퇴하던 제3기갑군단과 합류했다. 후퇴 대열의 후방으로 베케 중전차 연대가 접근해 소련군의 추격을 저지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